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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리뷰/라떼스토리 (추억과 에세이)

부활절, 그리고 빛과 소금...

by 라떼블루 2011. 4. 26.
아이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되고나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성실하게 직장에 나가셨지만 병원에 입원하시는 날도 많았습니다. 부양할 식구들이 많았기에 무리를 하다가 아프시기를 반복했습니다. 엄마도 오후에 일을 하러 다니셨고 아직 학생인 삼촌들의 뒷바라지와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도 보살펴 드렸습니다.


남동생은 엄마가 일을 나가면 함께 놀아주고 관심 가져주는 유일한 존재인 형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동생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두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일요일 아침이면 온 동네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풍금 소리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그때 이 아이는 신앙심이 무엇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 몰랐지만 왠지 의지할 곳이 생긴 것만 같았습니다.
마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충만하여 씩씩하게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입시'라는 큰 관문을 앞두고 있기 전까지는...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덧 너무 속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는, 옛날의 순수했던 기억을 찾아 다시 종교를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생활도 이미 또 하나의 조직생활과 같다는 생각에 이제는 쉽게 적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당으로 개종 아닌 개종도 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 친지관계에서 오는 의무감과 묵은 갈등 외에 종교생활 역시 의무처럼 참여해야 할 것도 많고, 그러는 가운데 사람들과 새로운 갈등도 생기고 그러다 보니 마음의 평화는 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의 순수한 마음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사는 게 너무 바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의지할 곳이 점점 없어져 간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관계는 있지만 믿음과 소명, 그리고 충만한 기쁨과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와 측은한 마음들을 더 이상 찾아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부터 이미 그렇게 변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의지하기 위해서, 위안받기 위해서 종교를 찾지만 단지 이러한 마음만으로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공동체를 떠날 수 없고 과정의 참여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본질은 가리워진 채 사람의 일을 가지고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앙을 포기했습니다. 믿음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가 반드시 그 응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단과 형식이 아닌, 본질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진정한 소통과정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바람직한 공동체가 형성될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서로를 인정하는 소통과 정의로운 가치,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존중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후진국이라고 행복 체감지수가 낮은 것이 아닙니다. 
종교와 의료와 교육은 정치와 정책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그 진정한 존재가치와 원칙을 지니고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부패한 사회는 비젼이 없습니다.

 
지금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참다운 종교의 역할은 어떤 것이며 그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부활절을 맞이한 어제, 냉담하고 있는 교우와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며 종교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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