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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리뷰/라떼스토리 (추억과 에세이)

추억의 노랑 기계 병아리, 어느 봄날에 만난 나의 첫 반려동물 강아지, 고양이, 햄스터, 애완조류, 심지어 뱀, 장수풍뎅이처럼 특이한 동물까지 까지, 요즘엔 개인취향에 따라 반려동물 종류도 참 다양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개나 고양이도 어른들이 여기기엔 가축의 개념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강아지나 돼지새끼가 무척 귀엽긴 했지만,, 방에서 키울 생각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지금처럼 사료도 아닌,그저 사람이 먹다 남은 잔반을 세숫대야 크기만 한 다라에 부어줘도 다 잘 먹고 아픈 데 하나 없는 강인한 토종들이었죠. 소중하고, 자랑스런 우리의 토종 가축들은 귀엽다기보다는 약간 무식하다고 여길 정도로 정말 튼튼했습니다. ^^; 봄 방학이 끝날 무렵, 학교 앞에서 만난 노랑병아리  이렇다 보니 지금과 같은 봄철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앞 병.. 2024. 12. 1.
쑥불 향기와 한여름 밤의 쏟아지는 별빛의 추억 요즘엔 밤이 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일상 자체가 바쁘고 길어지다 보니 늦은 밤도 그냥 오후의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일 뿐, 환한 아파트의 보안등 때문에 불을 다 꺼도 그다지 캄캄한 줄은 모르겠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글 쓰고 이웃과 소통하는 재미에 잠자리 드는 시간도 늦고 그러다 잠시 눈 좀 붙였나 싶으면 먼동이 트고... 그러다 문득 베란다에서 회색빛 밤하늘을 보다가 어린 시절 고향의 산마을에서 보던 밤하늘 풍경이 떠올랐다. 한 여름이어도 시골의 밤은 길었다. 마을에 가로등이나 보안등도 없었으니 일찍 깜깜해졌다. 마을 어른들이나 형들은 잠자리 들기 전에 누가 뭐라할 것 없이 한 집에 모여들어 옥수수나 수수깡 같이 먹을 것(어른들은 막걸리에 어죽거리와 김치) 좀 가져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2023. 2. 13.
아시아 축구 컵대회 '박스컵,킹스컵,메르데카배,머라이언컵'을 기억하시나요? 지금 2022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혹시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서 70~90 세대 분들이라면 과거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개최되던 각종 컵대회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지금이야 우리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단골손님이고, 아시아 축구 수준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발전해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이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월드컵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아시아 축구는 그야말로 무시 대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 축구 국제 대회 전성 시기 (~1980년대 후반 혹은 1990년 대 초반까지 존재했던 이야기) 19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아시아 축구의 맹주라고 자부하던 한국도 월드컵은 정말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디 홉스에게 있어 주토피아 그 .. 2022. 11. 29.
십자매 한 쌍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아기 새 최근에는 반려견을 기르는 세대가 정말 많아진 것 같습니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분들이 자주 눈에 띄거든요. 드물게 특이한 반려동물을 기르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새를 키우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애완용 조류가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새를 기르는 경우가 예전만큼 흔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오늘의 이야기는 제가 오래전에 기르던 새 이야기입니다. 종류는 십자매입니다. 십자매 한 쌍을 입양하게 된 이유 오래 전 딸아이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어린아이였을 때 지방의 어느 시골 장터에 구경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드물게 5일 장이 서는 곳이었는데 유명한 순대국밥집을 갔다가 그날따라 그곳에 장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대형마트와는 또다른 완전히 색다른 풍경에 저는 잠시나마 옛날 추억에 빠져들었고, 아내.. 2022. 11. 26.
시내버스 안내양을 기억하시나요? 차장이라 불렸던 어린 소녀들.. 1960년대 ~ 1980년대 후반까지 존재했던 시내버스 안내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고, 어려운 시절의 애환이 서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억척스러웠던 그때 그 시절의 버스 안내양 시내버스에도 안내양이 있었다는 것을 아시나요?아마도 7080 세대 분들은 여전히 시내버스 안내양을 기억하실 겁니다.80년 대 초반까지도 버스 안내양이 있었으니까 8090 세대 중에서도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와~ 벌써 4,50년 전이라니.. 아무튼 버스 안내양은 시내버스에서 버스 요금을 징수하고, 문을 닫고 열어주는 일을 했습니다.사람들은 이런 여승무원들을 '차장'이라고 불렀죠.이들이 승객들의 탑승 안전을 확인한 뒤 차체를 손으로 "탕탕" 치면서 "오라이~(아마도 영어 발음 .. 2022. 11. 18.
'삐삐'를 기억하시나요? 통신기기와 메신저 소통 발달에 대한 단상 혹시 '삐삐'를 기억하시나요?미드 '말괄량이 삐삐'도 있었지만,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호출기 '삐삐'입니다.이 호출기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30년 전인 90년대 같습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의 단계를 지나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시대에 삐삐라는 호출기를 사용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이제는 오래전 추억이 되었습니다.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어찌 보면 정말 긴 시간이기도 하고,,바쁘게 지내온 일상생활의 연장선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현듯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그때의 물건들이 간직했던 시간 속의 분위기와 추억들도 되살아나곤 합니다.'삐삐' 역시 그중 하나인 듯합니다. 지금과 같이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일상 편의를 누리는 상황에서.. 2019. 9. 1.
[위 워 솔저스] 할 무어 중령의 명연설 (리더의 조건) 맬 깁슨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위 워 솔저스'는 베트남 전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극 중 맬 깁슨이 연기한 할 무어 중령은 실제 인물이며, 그가 작전에 투입되기 전 병사들에게 했던 연설문은 지금도 참된 리더의 명연설문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참다운 리더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명연설의 번역본과 원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번역본 (전문 생략) "우리는 이제 결연한 적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제군들에게 모두를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그러나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우리가 전장에 들어설 때 나는 제일 먼저 들판에 발을 디딜 것이고, 맨 나중에 발길을 돌릴 것이며, 내 뒤에 아무도 남겨놓지 않을 .. 2017. 2. 20.
정월대보름 쥐불놀이의 추억 지금 대한민국의 시국과 어울리지 않을진 모르지만, 어쨌든 어제가 정월대보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월대보름 쥐불놀이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아련합니다. 어렸을 때 첩첩산골 시골에서 자란 덕분에 동년배 중에서도 드물게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이죠. 필자가 어렸을 때 동네 형들은 아마 지금의 같은 세대보다 꽤나 조숙했던 것 같습니다.여름이면 방과 후에 어른들을 도와 논밭에서 일하고 동생들을 데리고 놀아주던 형들은 어린 저의 눈으로 보았을 때 못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뭐,, 일찍 술 담배를 배우는 것 같기도 했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나가 취업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만. ^^; 그러는 가운데 겨울철, 특히 정월대보름이 되면 아이들은 동네 형들과 함께 마을 어귀에 모여 정.. 2017. 2. 12.
복숭아 과수원길... 어떤 과일을 좋아하시나요? 전 어렸을 때 부터 복숭아를 좋아했습니다. 복숭아 꽃도 예쁘고 복숭아 열매도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제 어린시절 기억에 아가씨들은 밤꽃 필 때 밤나무골에 가지 말고 장정들은 복숭아 수확할 때 가지말라는 어르신들 말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재밌습니다. 그리고 제사상에는 절대 올리면 안되는 과일이고요. (仙道과실이라 귀신 쫓는다고) 하지만 사실 요즘 제일 비싼 과일이 복숭아입니다. 출하시기도 짧고 쉬 물러져 상품화하기 참 어려운 과일이기 때문입니다. 까치가 배 다음으로 좋아하고 단 과즙이 풍부해서 벌레도 많이 탄답니다. 어렸을 때 외숙모를 따라 복숭아 과수원에 가는 날이면 저는 요즘 아이들 소풍가는 것 보다 더 기뻤습니다. 형들은 목장이나 논에 일 나가고 외숙모는 품삯 일로 과수원에.. 2011. 7. 15.
간이역의 가락국수, 그리고 아버지... 어린시절 서울에서 작은 사업 으로 바쁘신 부모님 때문에 시골의 산골마을 외가집에서 성장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잠깐 귀가했다가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가곤 했는데요, 당시 동대문에 있던 고속터미널의 버스표를 구하기 힘들어서인지 서울역 기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경기도 남부, 충청남도 경계에 있던 산골마을인지라 작은 간이역이 하나 있는데 당시 완행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모든 역마다 다 정차를 해서 엄청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 정차하는 경우도 빈번했는데 역에 가락국수를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정차하는 동안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열차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평소에 외식을 거의 안하다 보니 자장면도 잘 안사주시는 편이었는데 그 날은 어쩐일인지 간이역의 가락국수를 한 그릇 사다 주셨.. 2011.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