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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리뷰/라떼스토리 (추억과 에세이)

쑥불 향기와 한여름 밤의 쏟아지는 별빛의 추억

by 라떼블루 2023. 2. 13.

요즘엔 밤이 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일상 자체가 바쁘고 길어지다 보니 늦은 밤도 그냥 오후의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일 뿐,

환한 아파트의 보안등 때문에 불을 다 꺼도 그다지 캄캄한 줄은 모르겠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글 쓰고 이웃과 소통하는 재미에 잠자리 드는 시간도 늦고 그러다 잠시 눈 좀 붙였나 싶으면 먼동이 트고...

 

그러다 문득 베란다에서 회색빛 밤하늘을 보다가 어린 시절 고향의 산마을에서 보던 밤하늘 풍경이 떠올랐다.

한 여름이어도 시골의 밤은 길었다.

마을에 가로등이나 보안등도 없었으니 일찍 깜깜해졌다.

 

마을 어른들이나 형들은 잠자리 들기 전에 누가 뭐라할 것 없이 한 집에 모여들어 옥수수나 수수깡 같이 먹을 것(어른들은 막걸리에 어죽거리와 김치) 좀 가져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외삼촌이 이장님이어서 동네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마루에 TV도 있었고 간첩신고용 자석식 전화기도 있는 집이었다), 그러면 외숙모는 어르신들이 낮에 천렵해 온 민물고기를 가마솥에다 넣고 국수도 넣고 고추장도 풀고 해서 어죽을 끓이신다.

 

볏단으로 아궁이를 때며 동네 아주머니들과는 조그조근 하게 수다를 떠신다.

볏짚 타는 냄새가 구수하다.

 

형들은 어른들 안 보이는 데서 서로 설레발을 치며 몰래 막걸리 전작을 하고,

나처럼 어린 또래들은 할머니한테 옛날 얘기 해달라고 조르거나 부엌에 들어가 연신 가마솥을 열어 본다.

 

이 모든 것이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모기 때문에 마른 쑥을 태우며 그 불빛을 전등 삼아,

그리고 그 벌레 쫗는 마른 쑥 내를 향기 삼아 피어내는 한여름 마당 풍경이었다.

 

밤하늘-은하수-별빛-풍경-이미지
밤하늘 별빛 풍경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멍석에 누워 본 밤하늘이었다.

정말이지 무수히 많은 별들이 눈 앞에 어지러이 흩뿌려져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 풍경이었다.

 

그 많은 별들이 수놓인 하늘에 한줄기 가로지른 마치 강물 같은 흰 빛의 띠가 보인다. 

그러면 또 묻는다.

 

"형아! 저게 뭐여?"

" 응 저거? 저게 바로 미리내(은하수)여.."

 

늘 물어봐서 이미 아는 말이지만 '미리내'라는 말이 예뻐서 사촌형에게 한 번 더 묻는다.  

그리고 나면 아늑한 기분에 빠져 누운 채 밤하늘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가끔씩 아이에게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자연과 추억,

그리고 그와 같은 아련한 향수를 알게 해주고 싶어도 어릴 적 기억의 그런 시골동네를 이젠 찾기 힘들다.

 

설령 찾아가더라도,

서울에서만 자란 아내는 자연 자체는 좋아하하지만  조금 오래 머물라치면 불편해하는 것이 좀 많고, 아이에게도 그다지 큰 감흥을 기대하긴 좀 어렵다 ^^

 

한여름 밤, 쑥향을 맡으며, 어른들의 걸걸한 얘기 소리와 도란도란 속닥거리는 동네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소리를 자장가 삼고 있노라면,

그 무수한 밤하늘의 별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내게 속삭여주듯 내 눈 앞에 다가와 어느덧 아늑한 꿈 속으로 젖어들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던 한여름의 밤풍경을 이제는 좀처럼 볼 수가 없는 것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아니, 어딘가에선 또 볼 수 있겠지만, 이러한 그리움은 일상의 동이 트면 또다시 까막히 잊힐 것임을 잘 안다.

 

어린 시절 이 세상 그 어느 것 보다도 더 크고 너그러웠던,

도무지 어떤 것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상상의 꾸러미를 안겨다 주었던,

그 한여름의 밤풍경을...

 

P.S.. 이 글은 이제는 종료된 다음 블로그에 올렸던 추억의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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