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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리뷰/라떼스토리 (추억과 에세이)

'삐삐'를 기억하시나요? 통신기기와 메신저 소통 발달에 대한 단상

by 라떼블루 2019. 9. 1.

혹시 '삐삐'를 기억하시나요?

미드 '말괄량이 삐삐'도 있었지만,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호출기 '삐삐'입니다.

이 호출기가 본격적으로 상용화 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30년 전인 90년대 같습니다. 

  

스웨덴 동화 원작, 드라마 삐삐는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의 단계를 지나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시대에 삐삐라는 호출기를 사용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이제는 오래전 추억이 되었지만,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어찌 보면 정말 긴 시간이기도 하고, 바쁘게 지내온 일상생활의 연장선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현듯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그때의 물건들이 간직했던 시간 속의 분위기와 추억들도 되살아나곤 하죠.

'삐삐' 역시 그 중 하나인 듯합니다.

 

지금과 같이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일상 편의를 누리는 상황에서 핸드폰은 아득히 먼 미래의 일상으로도 상상이 잘 되지 않던 공중전화 사용 세대에게 있어 호출기인 삐삐의 등장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소통 기기의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을 때 내가 그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는 곳의 전화번호(삐삐를 보낸 사람이 있는 곳의 전화번호)를 입력하여 송출하게 되면 삐삐를 가진 이에게 내가 보낸 연락받을 번호가 찍히게 되는 것이죠.

 

추억의 통신기기 '삐삐'

 

그래서 주로 사무실이나 다방(커피숍) 같은 데서 해당 전화번호로 삐삐를 치게 되면 이 번호를 받은 호출기 주인, 즉 통화하고자 한 이가 전화를 하여 비로소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죠.

번호를 보내는 사람은 삐삐의 주인이 연락할 수 있는 장소에서 대기해야 하고, 커피숍 같은 곳에서는 데스크에서 "손님 중에 아무개 전화받으세요"라고 알려주는 중개인(?)이 있어야 하고, 번호를 호출받은 이는 가까운 공중전화를 찾아 번호를 보낸 이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또는 전화통화를 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직접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부재중이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원하는 시간대에 통화를 할 수도 없었으며,  공중전화 부스에는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에 삐삐는 매우 유용한 소통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삐삐세대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상용화 되고 차세대 통신수단이 계속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처음 번호를 송출받았을 때의 신기함,

공공장소여서 진동모드로 해놨다가 처음 진동이 울렸을 때 깜짝 놀라 자판기 커피를 쏟았던 기억,

정말로 호출번호로 전화를 해왔던 것에 대한 놀라움 등...

그래서 특히 연인들에게는 정말 최적의 선물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족쇄의 등장이라는 걱정스러운 여론도 등장했습니다.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통제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죠.

호출해도 연락을 하지 않아 다투는 커플도 생겨났고, 직장인의 경우에는 업무시간 외에 수시로 호출해대는 직장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휴대폰이나 카톡과 같은 메신저가 있기 전이라 이 정도의 케이스만으로도 걱정스러워하는 일각의 우려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메신저 폭주시대, 그럼에도 진정한 소통은 더 요원해지는듯 하다.

 

그래도 돌아보면..

삐삐가 존재하던 시절이 물론 지금에 비하면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물질적 풍요나 세련된 분위기는 다소 덜했을지라도 지금에 비하면 기다릴 줄 아는 삶의 여유와 강박적 소통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좀 더 있었으며,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의 한 켠에 나름 낭만적인 분위기를 간직했던 시절이었던 듯합니다.

 

적어도 지금처럼 만나서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기이한 풍경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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