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와 토픽/시사.이슈

50년 전으로 돌아간 계엄령 사태와 1987년 6.10 민주항쟁의 기억

by 라떼블루 2024. 12. 20.

올 12월, 44년 만에 이 땅에 계엄령이란 믿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부마항쟁과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광주민주항쟁 직전 발생된 계엄령 시기를 소환하듯, 이번 내란 사태는 우리나라를 50년 전으로 후퇴시켰습니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했다는 찬사를 받던 나라가..

세계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계엄령이 선포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계엄령에 대한 기억  feat. 5.18 광주민주항쟁

 

부마항쟁 시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차지철은 "탱크로 밀어 캄보디아처럼 20만 명만 죽이면 된다"는 발언을 하며 계엄령을 만지작거리다가 김재규에 의한 10.26 사건이 발발하기도 했습니다. 약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최근 드러난 증언 중에, 김용현 국방장관이 "기갑부대를 동원해 탱크로 밀어버려야겠다"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경악할만한 사태인 것입니다.

하지만, 내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진행 중입니다.

 

국민학교 6학년 시절..

매일 저녁 9시가 넘으면 TV에서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면서 "애들은 자라!"는 공익 광고가 나왔습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금이 있던 시절이기도 했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애들 방이 따로 있던 것이 아니라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보면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어른들과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장공비들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린 시절에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6.25 전쟁 영화를 많이 보기도 했고, 이승복 어린이가 무장공비에게 처참하게 살해되었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기억도 너무 또렷해서 '정말로 북괴가 한꺼번에 남침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은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어려서 광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실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5.18-광주-민주항쟁-당시-거리의-계엄군들-흑백-사진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의 계엄군

 

1987년 그해 여름, 6.10 민주항쟁

 

1987년 6월..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학생이 된 필자는 당시 명동 한국은행 사거리에서 국민들과 함께 6월 항쟁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쟁취하고자 모든 국민들이 함께 했습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더욱 촉발된 1987년 당시 6.10 국민항쟁은 마침내 4.19 의거를 이어받은 국민 승리로 마무리 됐고, 진정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한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뿌듯한 순간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6.10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을 이루기 전까지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선제 방식으로 체육관에서 집권 세력들이 마음대로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바로 박정희의 유신독재헌법의 잔재였던 것이죠.

 

당시에는 여대생 핸드백, 일기장까지도 사복경찰이나 기관원들이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붙잡아두고 "잠시 검문하겠다"하면서 소지품을 막 뒤져보던 시기라 가방 자체를 안 가지도 다녔던 기억도 있습니다.

 

혹시나 문제 삼을까 봐 인문학, 사회학 책들은 아예 못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군에 반강제(?)로 입대했던 친구들 중에 의문사가 많이 발생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그때의 조중동은 그래도 지금 정도로 아주 개막장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박종철 치사 사건을 호외로 보도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명동성당과 김수환 추기경님, 정의구현사제단과 수녀님들은 정말 시위대에게는 수호천사, 보호자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명동성당에 피신한 시위대들을 잡아들이려고 명동성당으로 진입을 시도했던 기동대, 백골단 앞을 추기경님과 주교님들, 그리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손을 맞잡고 인간 성벽을 만들어 학생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건물 창문 밖으로 휴지 등을 던져주며 응원하던 화이트컬러 직장인들이 마침내 가세하여 동참하기 시작했고, 택시와 버스 기사님들의 합동 경적 시위도 전두환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며 전 국민항쟁으로 발전했던 것입니다.

 

윤석열-탄핵-촛불집회-장면
12.3 내란 계엄령 사태로 촉발된 윤석열 탄핵 촛불집회

 

21세기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내란 계엄군  feat. 내 인생 두 번째 계엄령

 

그런데..

지금 벌어진 이 윤석열 내란 사태라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섬뜩한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아무리 21세기라도 국민이 멍청하면 히틀러 같은 자를 당선시켜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구나
  •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방심하는 순간,, 민주주의든 경제든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모든 정상 시스템이 단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구나
  •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권력을 가진 자들은 절대로 국가·민족·국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 유지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구나
  • 대부분의 언론과 사법부가 완전히 기득권이 되어 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구나
  • 일본과 친일매국 세력들은 여전히 한국 내 수구매국 세력들과 연대하여 대한민국을 병탄 하려는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구나

 

국회로 달려간 야당 국회의원과 국민, 그리고 촛불과 응원봉에 의한 '빛의 집회'로 막을 내린 비상계엄 쿠데타 내란은 윤석열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지긴 했지만, 이번 내란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어도,,

우리는 절대로 이번 사태를 잊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는 너무도 깊은 내상을 입었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 극우 세력,
  • 특정 세력을 추종하는 광신도,
  • 진보를 가장한 극단적 이기주의,
  • 그리고 사이비 집단 및 왜곡된 근본주의자 등과 같은 사회악,
  • 이런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확증편향'과 '악의 평범성'

 

  • 이런 사악한 것들이 일반화되면,,
  • 국민의 힘과 윤석열 같은 존재들을 위한 자양분의 뿌리가 되어,
  • 또다시 제2, 제3의 계엄령은 계속될 것입니다.
  • 단지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죠.

 

따라서..

시대정신, 집단지성,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역사의식과 인문학 등과 같은 올바른 참여 가치가 절대로 무너지면 안 됩니다.

항상 깨어있는 국민의식이 유지되어야만 이런 참상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말 진정한 민주공화국이어야 합니다!

 

영화 1987 (넷플릭스)

 

 

영화 서울의 봄 (넷플릭스)

 

서울의 봄, 어린 시절 그때를 회상하며..

 

서울의 봄, 어린 시절 그때를 회상하며..

영화 '서울의 봄'이 벌써 1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 계속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그리고 '노량 - 죽음의 바다'가 바통을 이어받아 개봉한 지 8일 만에 벌써 300만을 돌파하기 직전입니다. 이러

grand-bleu.tistory.com

투표의 기준, 무슨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뽑을까?

 

투표의 기준, 무슨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뽑을까?

22대 총선이 끝났습니다. 이번 선거는 정말 국가의 명운이 걸린 선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요한 선거였습니다. 이에 대한 부분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grand-bleu.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