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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토픽/토픽.스토리

서울의 봄, 어린 시절 그때를 회상하며..

by 라떼블루 2023. 12. 28.

영화 '서울의 봄'이 벌써 1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 계속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량 - 죽음의 바다'가 바통을 이어받아 개봉한 지 8일 만에 벌써 300만을 돌파하기 직전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영화와 K-콘텐츠라는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올바른 역사인식과 정의로운 사회적 가치를 일깨우는 작품이란 점에서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과 신군부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의 현실적 배경이 되던 당시의 필자는 어린 초등생(국민학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을 아직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 때였으니까 당시의 사회, 정치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린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겪은 10. 26 사태 분위기

 

국민학교 학생 시절에는 아침마다 운동장에 모두 도열하여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솔직히 마이크가 웅웅 울려서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지루해 죽을 맛이었지만, 어린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조회 중에 꼼지락 거리거나 심하게 움직이는 것을 선생님들은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5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데 이렇게 서서 30~40분가량 있어야 하니 지루하고 답답했겠죠.

인내심 하나는 제대로 배운 거 같습니다.

조회가 끝나면 교실로 그냥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었고, 행진곡에 맞춰 행진하듯 대오를 지키며 교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이 아무 말도 없는 겁니다.

그리고는 간간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훌쩍거리는 교장 선생님,

평소와는 달리 뭔가 침통한 표정의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모두 숨죽여 경직된 채,

처음 보는 이 싸한 분위기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몹시 불안해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

이 엄청난 일을 알게 된 당시 아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북괴군이 쳐들어와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였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반공전쟁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간첩과 무장공비의 만행, 그리고 공산군의 잔인함 등..

이런 것들이 행여나 실제로 가까이서 일어나게 될까 봐 불안했던 그때 아이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속시원히 상황을 얘기해 주는 것도 아니고, 물어볼 엄두도 나질 않았으니까요.

 

지금과 비교하면,

학교 역시 병영과도 같은 문화가 상당히 적용되고 있었고,  당시의 반공 교육 수준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습니다. 

학교 본관 건물 외벽에는 반공, 방첩이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걸려있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반공 포스터를 그리게 했는데 그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때려잡자. 김일성!"
  • "미친개는 몽둥이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반공 교육을 받던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건,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지도 모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안보상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죠.

미국 항공모함이 동해 근처로 진입해 있었을 정도니까요. (미 항공모함은 광주 민중 항쟁 시기에도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혼란을 틈타 북의 도발이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었겠죠)

 

어른들이 술자리에서 쉬쉬 하며 말을 하고,

길거리에서 대성통곡하는 어른들이 있는가 하면,

대학생 아저씨, 아줌마들은 거리에서 더 격렬하게 "서울의 봄이 왔다"며, 여러 가지 구호를 격렬하게 외치고,

경찰들은 물론 군인들도 많이 보이는 그런 분위기..

 

어른들에게 조심스럽게 무슨 일들인지 물으면 "마, 애들은 몰라도 된다. 애들은 가라"라는 식이었으며,

아이들끼리 서로 두려움에 떨며 "전쟁 나면 어떡해?" 하는 말을 하고 있으면, 어른들이 다가와 "어디서 그딴 큰일 날 소리 하느냐"며 심하게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나자 아이들은 이런 분위기에 금방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정말 못 견디게 힘들었던 것은 바로,,

TV 방송이 통 나오질 않아 남자애들은 마징가 Z를, 여자애들은 캔디와 안소니 같은 만화영화를 못 보는 일이었습니다.

 

영화-서울의-봄-메인-포스터-이미지
영화 서울의 봄

 

12. 12 사태 이후 광주민주항쟁 시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마침내 TV가 나오기 시작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 장면과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아이의 생각으로 '아! 박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또다시..

군인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고,

정치가라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대학생 아저씨, 아줌마들은 "빼앗긴 서울의 봄"을 외치기 시작했고,

뉴스에서는 남쪽 지방에 북괴 무장세력이 침투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흘러나왔습니다.

5. 18 광주민주항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뉴스에서는 북괴 침투 세력과 합작한 광주 시민들을 폭도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데모 시위가 늘어났고, 계엄령 때문에 군인들이 휴가 나올 때랑 다르게 철모를 쓴 복장을 하고 시내 곳곳에서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어린애들은 또다시 북한이 쳐들어 올까 봐, 그리고 또 TV 못 볼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이상한 분위기 속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왠지 뭔가 또 이상하게도 최규하 대통령이 돌연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군인 예복을 입고 군악대가 울리는 단상에서 경례를 받더니 카퍼레이드 리무진 차량에 오르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또 새로운 대통령이 나온 겁니다.

누군가 광주사태(당시에는 그렇게 불렀음)를 진압한 공로로 대통령이 된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12. 12 사태 벌어진 이후였지만,

12. 12 사태와 관련된 신군부 쿠데타 사건은 사실 당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는 알 수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린 한밤중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군부에 의해 진실이 철저히 통제되던 시기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비가 개입된 광주 지역 폭동을 진압한 것이 전두환이고, 이로써 사회는 다시 안정을 찾게 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깨어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영화 '서울의 봄'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당시의 현실은 필자의 어린 시절 눈높이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성장하면서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되었고,

1987년 대학생이 되어 6. 10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낸 감동의 현장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영화 '서울의 봄', 그리고 '노량 -죽음의 바다'가 수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흥행을 이어가고 있어 기쁩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주는 감동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엄중한 현실에 적용되어

다시 한번 올바른 역사관과 민주적 가치,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 가치를 회복하는,

시대정신의 부활에 적용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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